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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건강

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나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전쟁이 남긴 상처'

by 간호사 제니할매 2026. 7. 29.

 

나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전쟁이 남긴 상처

"사람은 누구나 부모를 통해 세상에 나온다."

하지만 부모를 기억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따뜻한 품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든든한 등을 기억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아픔을 부모라는 이름과 함께 품고 살아간다.

오늘은 간호사 제니할매가 아닌, 한 딸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의 어린 시절은 혹독하게 가난했다.

6·25전쟁 이후 베이비붐 세대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대부분 어려운 시절을 살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 가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우리 아버지는 다른 집 아버지와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6·25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이었다.

나라를 위해 싸웠던 영웅이었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아버지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 당시 사람들은 말했다.

"귀신이 들렸다."

"굿을 하면 낫는다."

"액운이 꼈다."

온갖 굿을 하고, 부적을 붙이고, 좋다는 약을 찾아다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간호대학에 입학하고서야 아버지의 병을 처음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였고, 심각한 정신질환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환경에서 사람이 겪을 수 없는 참혹한 장면들을 보고 살아남은 사람에게 남겨진 깊은 상처였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정신건강에 대한 이해도, 치료도 부족했다.

정신과를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숨겨야 할 일이었고, 많은 가족들이 병을 병으로 인정하지 못한 채 살아야 했다.

우리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어머니를 의심했다.

사소한 일에도 화를 냈고, 때로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그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 한쪽이 먹먹해진다.

어느 날은 자신의 이름과 동네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이름을 바꿔 달라며 구청 앞에서 혼자 시위를 하셨다.

또 어느 날은 누군가 계속 치아를 빼라고 말한다며 멀쩡한 이를 모두 뽑겠다고 치과에서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어린 나는 그 상황이 너무 무서웠다.

왜 우리 집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창피하기도 했고,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아버지도 누구보다 괴로우셨다는 것을.

병은 사람을 바꾸기도 하지만, 한 가족의 인생까지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도 한다는 것을.

 

그 모든 시간을 가장 힘들게 버틴 사람은 어머니였다.

생활력이 뛰어난 분도 아니었고, 배운 것이 많았던 분도 아니었다.

그저 참고 또 참았다.

오늘만 지나가면 내일은 조금 나아질 거라는 희망 하나로 버티셨다.

하지만 내일도, 그다음 날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우리 형제들은 등록금을 내지 못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여러 번 교무실로 불려갔다.

담임 선생님께 혼나고, 등짝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날도 적지 않았다.

그때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왜 우리 집만 이렇게 살아야 하나.

왜 우리 엄마는 늘 우셨을까.

왜 우리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처럼 웃지 못했을까.


세월은 참 이상하다.

그렇게 힘들던 시간도 어느새 반세기가 더 흘렀다.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만약 지금 같은 시대였다면 조금 더 일찍 병을 이해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셨다면 삶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물론 누구도 그 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전쟁은 끝났어도, 어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평생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구순을 넘긴 어머니는 내 옆에 누워 계신다.

예전처럼 내 이름을 또렷하게 부르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은 딸인 나를 한참 바라보시다가 조용히 물으신다.

"댁은 누구세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하지만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엄마 딸이에요."

잠시 후 어머니는 다시 나를 잊으신다.

예전 같았으면 눈물이 먼저 났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엄마가 내가 너무 늙어서 못 알아보시나 보다.'

씁쓸한 농담을 혼자 해보며 웃는다.


오랜세월 간호사로 일하며 수많은 환자를 만났다.

치매 환자도,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분들도, 가족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르신들도 많이 만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한 사람을 떠올린다.

바로 우리 아버지.

그리고 우리 어머니다.

부모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도 병 때문에 고통받은 한 사람이었고,

어머니도 시대가 감당하기 어려웠던 삶을 묵묵히 견뎌낸 한 사람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은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아팠던 가족이었다.


혹시 지금 부모님이 곁에 계신다면 한 번 손을 잡아드리길 바란다.

기억을 잃기 전에.

이름을 잊기 전에.

그리고 "고생 많으셨어요."라는 말을 전할 수 있을 때.

부모는 영원히 우리 곁에 있을 것 같지만, 세월은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아버지께도 인사를 드린다.

"아버지, 이제는 전쟁도, 고통도 없는 곳에서 편히 쉬세요."

그 한마디를 전하는 데, 내 인생은 참 오래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