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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건강

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간호사도 울었다'

by 간호사 제니할매 2026. 8. 1.

간호사도 울었다

"간호사는 울면 안 된다."

간호대학 실습을 시작할 때 선배들이 가장 먼저 해주던 말이었다.

"환자보다 먼저 울지 마라."
"보호자 앞에서는 더더욱 울지 마라."

그래야 환자도 의지할 수 있고, 보호자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40년이 넘도록 한국과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수천 명의 환자를 만났다.

죽음을 수도 없이 보았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는 무덤덤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사람은 죽음에 익숙해질 수는 있어도, 이별에는 끝내 익숙해지지 못한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던 아침

그날도 평소처럼 방문간호 일정표를 확인했다.

"오전 10시."

늘 만나던 할머니였다.

혼자 사셨지만 참 단정한 분이었다.

현관 앞 화분에는 꽃이 피어 있었고, 집 안에서는 늘 은은한 커피 향이 났다.

내가 초인종을 누르면

"Come in!"

하고 밝게 외치시던 분.

혈압을 재고, 폐 소리를 듣고, 약을 확인한 뒤 한참을 이야기하다 돌아오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이상하게 조용했다

그날은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휴대전화도 받지 않았다.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방문간호를 오래 한 사람들은 안다.

'이 조용함이 가장 무섭다.'

관리실과 경찰의 도움으로 문을 열었다.

집 안은 너무도 조용했다.

TV는 켜져 있었고,

식탁에는 반쯤 마신 따뜻한 차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소파에 조용히 기대어 계셨다.

마치 잠든 것처럼.

하지만 이미 심장은 멈춰 있었다.


마지막까지 혼자였다

응급대원들이 도착했다.

심폐소생술은 의미가 없었다.

사망 시간이 오래 지난 상태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없이 환자를 떠나보냈는데,

그날따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실 벽에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환하게 웃는 손자들.

결혼식 사진.

크리스마스 사진.

그런데 마지막 순간,

그 많은 사진 속 사람들은 아무도 곁에 없었다.

미국에서 방문간호를 하다 보면 이런 장면을 종종 만난다.

자녀들은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멀리 살고, 일하고, 삶에 쫓기다 보니 자주 오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어르신들이 혼자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그 사실이 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냉장고에 붙어 있던 메모

응급대원들이 정리를 하는 동안

나는 냉장고 문에 붙어 있는 메모를 보았다.

삐뚤삐뚤한 글씨.

"간호사 제니 오는 날."

그 아래에는

'커피 준비.'

라고 적혀 있었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나를 기다리셨던 것이다.

커피를 함께 마시려고 준비해 두셨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늦었다.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이 생각은 간호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을 괴롭히는 질문이다.

물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늘 그렇지 않다.

'혹시 내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이 질문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간호사도 사람이다

사람들은 간호사는 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항상 침착해야 하고,

언제나 웃어야 하며,

눈물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간호사도 사람이다.

우리는 환자의 이름을 기억한다.

좋아하는 음식도 기억한다.

손주 자랑도 기억한다.

생일도 기억한다.

"다음 주에 또 봐요."

하며 헤어진 약속도 기억한다.

그래서 어느 날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우리 마음에도 빈자리가 생긴다.


차 안에서 터진 눈물

모든 업무를 마치고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지 못했다.

핸들을 붙잡은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리고 결국 울었다.

소리 내어 울었다.

간호사도 운다.

아니,

간호사는 너무 많이 울어서 아무도 모르게 우는 법을 배운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병실 화장실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퇴근길 차 안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렇게 눈물을 닦고 다시 출근한다.

다음 환자를 위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방문간호를 하며 깨닫는 것이 하나 있다.

노인에게 가장 무서운 병은 암만이 아니다.

치매만도 아니다.

외로움이다.

며칠 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것.

하루 종일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 것.

이것이 사람을 가장 빨리 늙게 만든다.

가끔 부모님께 전화를 해보자.

"식사는 하셨어요?"

이 한마디가 어떤 약보다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부모님뿐 아니라 혼자 사는 이웃에게도 따뜻한 인사 한마디를 건네보자.

우리가 건네는 작은 관심이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제니할매의 한마디

그날 이후 나는 환자 집을 나설 때마다 꼭 한마디를 더 한다.

"다음 주에 또 만나요."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한마디를 더 덧붙인다.

'부디 그때까지 건강하게 계세요.'

간호사는 병을 치료하는 사람만은 아니다.

누군가의 마지막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날은 약보다 손을 한 번 더 잡아드리는 일이 더 큰 치료가 된다.

오늘도 나는 초인종을 누른다.

혹시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그리고 나는 안다.

간호사도 울 수 있다는 것을.

눈물은 약함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진심으로 기억했다는 증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