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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건강

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약이 밥보다 많아요'

by 간호사 제니할매 2026. 7. 28.

 

약이 밥보다 많아요

"제니 할매, 밥은 한 공기인데 약은 두 공기예요."

어느 날 방문간호를 갔더니 80대 할머니가 식탁 위를 가리키며 웃으셨습니다.

아침 약.
점심 약.
저녁 약.
자기 전 약.

약통을 펼쳐 놓으니 알록달록한 알약들이 마치 사탕처럼 줄지어 있었습니다.

"이게 다 드시는 거예요?"

"응. 의사 선생님이 준 거니까 먹어야지."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혈압약은 두 종류.
당뇨약도 여러 가지.
관절약.
위장약.
변비약.
수면제.
비타민.
건강식품까지.

약이 밥보다 많았습니다.


40년 넘게 간호사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본 풍경 중 하나가 바로 '약 봉투 컬렉션'입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약이 하나씩 늘어납니다.

무릎이 아프면 진통제.

속이 쓰리면 위장약.

잠이 안 오면 수면제.

약 때문에 변비가 생기면 변비약.

변비약 때문에 설사를 하면 지사제.

어느새 약이 또 하나 늘어낙니다.

이처럼 한 약의 부작용을 다른 약으로 막는 일이 반복되면 약의 종류가 계속 늘어날 수 있습니다. 고령층에서는 여러 만성질환을 동시에 치료하다 보니 여러 약을 함께 복용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약이 많아질수록 부작용과 약물 상호작용의 위험도 커질 수 있습니다.


제가 늘 드리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약이 왜 필요한지 알고 드세요?"

대부분은 웃으며 말씀하십니다.

"글쎄… 의사가 먹으라니까 먹지."

사실 이것이 가장 위험한 대답일 수도 있습니다.

약은 많이 먹는다고 건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약을 정확하게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계속 어지럽다고 하셨습니다.

MRI도 찍고 CT도 찍었습니다.

별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약을 확인해 보니 혈압약이 두 병원에서 각각 처방되어 같은 계열의 약을 중복으로 드시고 계셨습니다.

주치의와 상의해 약을 정리한 뒤 어지럼증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때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병보다 약이 날 괴롭혔네."

그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Polypharmacy(다약제 복용)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보통 여러 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특히 다섯 가지 이상의 약을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에는 정기적인 약물 검토가 권장됩니다. 연구에 따르면 고령자의 다약제 복용은 낙상, 인지 저하, 약물 상호작용, 입원 위험 증가와 관련될 수 있어 의료진과 함께 꼭 필요한 약인지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방문간호를 다닐 때 꼭 확인하는 것이 있습니다.

"약통 좀 보여주세요."

냉장고보다 먼저 약통을 봅니다.

그 안에는 그분의 건강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약.

몇 년 전에 처방받은 약.

친구에게 얻어온 약.

남편이 먹다 남긴 약.

이웃이 좋다고 준 건강식품.

생각보다 이런 약들이 정말 많습니다.


건강식품도 조심해야 합니다.

"천연이라 괜찮겠지."

"비타민은 많이 먹을수록 좋겠지."

이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건강식품도 복용 중인 약과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 복용하려는 영양제나 건강식품이 있다면 의사나 약사에게 함께 확인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제니 할매의 작은 팁을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약은 숨기지 말고 모두 모으세요.

병원에 갈 때는 처방약뿐 아니라 영양제, 한약, 건강식품까지 한 번에 가져가 의료진에게 보여드리세요.

의사도 약사가도 모든 정보를 알아야 가장 안전한 처방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혼자 판단해서 약을 끊으면 안 됩니다.

"혈압이 오늘 정상인데?"

"이제 안 아픈데?"

이런 이유로 임의로 약을 중단하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약을 줄이거나 끊는 결정은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약은 늘기 쉽습니다.

하지만 건강은 약의 개수가 아니라 생활습관에서 시작됩니다.

잘 걷고,

잘 자고,

잘 먹고,

잘 웃는 것.

이 네 가지가 최고의 보약입니다.


제니 할매의 한마디

"약이 밥보다 많아지는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약을 믿기 전에 내 몸을 먼저 살피세요. 그리고 약은 혼자 관리하지 말고, 의사와 약사와 함께 관리하세요. 가장 좋은 약은 '필요한 약만 제대로 먹는 것'입니다."

오늘도 제니 할매는 약통 하나를 정리하며 어르신께 웃으며 말했습니다.

"할머니, 오늘은 약 하나보다 웃음 한 번 더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