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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건강

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끝나지 못할 부부싸움'

by 간호사 제니할매 2026. 8. 2.


끝나지 못할 부부싸움

"간호사 양반, 저 영감 좀 데려가요."

현관문을 열자마자 할머니의 첫마디였다.

나는 웃으며 신발을 벗었고, 거실 한쪽에서는 할아버지가 못 들은 척 텔레비전만 바라보고 있었다.

"흥! 저 양반은 죽을 때까지 안 변해."

오늘도 시작이다.

사실 이 집은 내가 방문할 때마다 거의 같은 풍경이다.

약부터 확인하기 전에 부부싸움부터 듣는 것이 어느새 내 업무가 되어 버렸다.


한국에서는 모두가 부러워하던 부부였다

믿기 어려웠지만 두 분은 한국에서 꽤 이름 있는 집안이었다.

최고 대학을 나왔고, 좋은 직장을 다녔으며 부족함 없이 살았다.

자녀들도 훌륭하게 키웠다.

주변에서는 부러워하는 부부였다.

그러나 인생은 국경을 넘는 순간 전혀 다른 시험지를 내밀었다.

미국에서는 학벌보다 영어가 필요했고,

명함보다 기술이 필요했다.

가진 재산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생활비는 계속 들어갔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언젠가는 통장이 바닥난다는 사실을 할머니는 누구보다 빨리 깨달았다.


할머니는 바늘을 들었고, 할아버지는 넥타이를 골랐다

평생 바느질을 해본 적도 없던 할머니는 봉제공장으로 갔다.

손가락은 피가 나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다.

그래도 자녀들 학비를 벌어야 했다.

"배워야지. 안 배우면 굶는 거야."

그 나이에 미싱을 배웠다.

하루 종일 실밥을 자르고,

밤에는 손목에 파스를 붙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달랐다.

"내 체면에 그런 일을 어떻게 하나."

출근은 하지 않았다.

대신 양복은 늘 말끔했다.

구두는 반짝였고,

향수 냄새도 은은했다.

말솜씨는 또 얼마나 좋던지.

동네 아주머니들과 차를 마시러 나가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할머니 눈에는 불이 났다.

"생활비는 내가 버는데 당신은 데이트나 다녀?"

그날도 싸웠고,

다음 날도 싸웠다.

그리고 또 싸웠다.


부부싸움에도 유통기한이 없는 집

신기한 것은 그렇게 싸우면서도 절대 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침에도 싸우고,

점심에도 싸우고,

저녁에도 싸운다.

다음 날이면 또 같이 밥을 먹는다.

"이혼하세요."

농담처럼 말하면 두 분은 동시에 나를 째려본다.

"무슨 소리야!"

둘이 한목소리를 낸다.

조금 전까지 싸우던 사람들이 말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늘 웃음이 난다.

부부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세월은 결국 두 사람 모두를 늙게 만들었다

이제 두 분 모두 80대 중반.

시간은 누구 편도 아니었다.

멋쟁이였던 할아버지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산적 같은 모습이 되었다.

양복 대신 헐렁한 티셔츠를 입는다.

반짝이던 구두도 사라졌다.

그리고 할머니.

젊은 시절 누구보다 강했던 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심부전 때문에 숨이 차다.

화장실까지 가는 짧은 거리도 다섯 번은 쉬어야 한다.

침대에서 일어나 의자에서 한 번 쉬고,

복도에서 또 쉬고,

벽을 잡고 숨을 고른다.

몇 걸음 걷는 것도 산을 오르는 일처럼 힘겹다.

숨소리는 거칠고,

발은 퉁퉁 부어 있다.

나는 혈압을 재면서 말없이 손을 잡아 드렸다.


소원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날 할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간호사 양반."

"네."

"난 저 영감한테..."

잠시 숨을 고르더니 웃었다.

"죽이라도 한 그릇 얻어먹으면 소원이 없겠어."

순간 웃음이 나왔다.

평생 싸운 사람에게 바라는 소원이 겨우 죽 한 그릇이라니.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을 울렸다.

할아버지는 못 들은 척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귀는 분명히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사랑은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

많은 부부를 만나며 느낀 것이 있다.

젊을 때는 사랑보다 자존심이 앞선다.

나이가 들면 자존심은 그대로인데 몸이 먼저 무너진다.

그때서야 깨닫는다.

국도 끓여주고,

손도 잡아주고,

약도 챙겨주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그러나 대부분 너무 늦게 깨닫는다.

"내가 해줄게."

이 한마디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간호사 제니할매의 한마디

나는 수백 명의 노부부를 만났다.

매일 싸우는 부부도 있었고,

한마디도 하지 않는 부부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사실 하나는,

끝까지 서로 곁을 지키는 사람도 결국 그 배우자라는 것이다.

자녀들은 직장이 있고,

손주들은 학교가 있다.

친구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난다.

마지막까지 같은 집에서 같은 시간을 견디는 사람은 배우자다.

그래서 오늘 집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한번 말해보자.

"오늘은 내가 밥할게."

"오늘은 내가 설거지할게."

"오늘은 내가 죽 한 그릇 끓여줄게."

사랑은 거창한 선물이 아니다.

늙어서도 따뜻한 죽 한 그릇을 건네는 마음.

어쩌면 그것이 평생 이어진 부부싸움을 끝낼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화해인지도 모른다.